철학하나

[철학하나] 신들은 주사위 놀이를 한다 (니체)

설왕은 2019. 4. 25. 23:03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신과 주사위 놀이를 언급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니체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니체(1844-1900)는 아인슈타인과 반대되는 말을 했습니다. 즉, 니체는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니체가 보는 세상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신들과 더불어 대지라는 신성한 탁자 위에서 주사위 놀이를 했을 때, 대지가 요동하고 갈라지고, 화염의 강을 뱉어냈다면, 그 이유는 대지가 창조적인 새로운 말들과 신성한 주사위 소리에 의해서 흔들리는 신성한 탁자라는 점에서이다."


니체도 아인슈타인과 같이 신의 주사위 놀이를 언급했는데요. 주사위 놀이는 예측 가능성, 우연의 발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주사위 놀이를 한다는 것은 예측 불가능하고 우연이 발생한다는 것이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측 가능하고 필연만 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반대해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언급했고, 반면에 니체의 말은 당연히 양자역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니체와 아인슈타인 모두 고전역학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니체가 물리학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고전물리학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고전역학적 사고를 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요. 19세기 후반에 획기적인 이론의 발표가 있었고 그 이론은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대유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859년 "종의 기원"을 통해 발표된 다윈의 진화론이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고전역학적 세계관에 기반한 이론입니다.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생물 발생의 무목적성을 주장했습니다. 니체는 대지가 신들이 주사위 놀이를 하는 신성한 탁자라고 언급하면서 철학적으로 세상의 무목적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니체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주장은 세상은 신들의 놀이터라는 것이죠. 놀이터에 참여한 사람들의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놀이터는 그냥 노는 곳입니다. 그게 목적이라면 목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특별한 목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니체는 주사위 놀이를 통해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측면보다는 무목적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인간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적 같은 것은 니체의 이론에서는 없습니다. 그냥 모든 일은 다 우연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이고 그 우연이 모여서 필연이 되는 것입니다. 니체는 존재 자체, 삶 자체를 긍정하고 있습니다. 주사위 놀이 자체를 긍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대단한 목적은 없지만 꽤 재밌는 일입니다. 세상은 예측 불가능하고 우연이 마구마구 발생하는 곳이지만 좋은 곳이다라는 관점입니다. 


니체의 이론은 진화론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생물은 무작위적으로 발생하고 방향이나 목적이 없습니다. 선과 악도 없습니다. 그저 발생할 뿐입니다. 그리고 환경에 맞는 생물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생물은 자연스럽게 도태됩니다. 무목적성이 받아들여지려면 신이 존재하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니체의 관점에서는 신은 거추장스러운 존재이죠. 그래서 그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는지도 모릅니다.


니체의 입장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선과 악에 대한 가치 판단 없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긍정하는 철학이 니체의 철학입니다. 하지만, 이런 점이 니체 철학의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세상에 악한 영향을 주는 존재도 있거든요. 나치와 히틀러가 대표적인 경우일 것입니다. 니체는 45세에 정신 이상을 일으키고 56세에 죽었는데요. 그가 계속 정신을 차리고 살아 있었다면 나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판단했을지 궁금합니다. 나치 입장에서는 니체의 철학이 마음에 들었을 것입니다. 존재는 긍정받고 또한 생존하게 되면 그 가치가 더해진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세상은 신의 놀이터일까요? 신이 재밌으려고 세상을 만든 걸까요? 니체는 신이 없다고 주장했고, 있더라도 신이 이 세상을 만든 특별한 목적 따위는 없는 걸로 봤던 것 같습니다. 니체의 관점에서 세상은 그저 재밌게 놀다가 가는 곳입니다.


마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도 니체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으로 보입니다. 


세계는 신의 놀이가 아니다. 세계는 신의 운명이다. 세계가 있고, 인간이 있고, 인간의 인격이 있고, 너와 내가 있다는 것, 여기에 신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108)    


세상이 놀이터면 좋은 점도 있습니다. 세상은 그냥 놀다 가는 곳이니 웃으며 즐기고 또 오래 살아남으면 장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세상에는 심각함이 있습니다.  삶에는 아픔과 슬픔과 고통이 수반됩니다. 그것은 단지 인간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가볍게 볼 수 없는, 그들이 감내하고 있는 존재의 무거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신은 세상을 존재하게 하기 위해 인간과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예수의 십자가라는 고통을 감수했습니다. 놀이터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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