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소설_그1]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_일제 강점기부터 한국 전쟁까지 보통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 그래서 더 특별하다

설왕은 2020. 1. 31. 09:00

소설과 담을 쌓고 지내던 저는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들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책도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책은 여러 번 출간되어서 다른 표지를 가진 것들이 많은데요.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책 안에 삽화도 들어가 있고요. 표지 오른쪽 위에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의 제목만 듣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을 생각했습니다. 그 책과 제목이 비슷하다고 생각했고요. 미스터리 추리 소설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고요. 책을 조금 읽으면서 왜 이런 제목을 지었을까 궁금했습니다. 내용과 정말 별 상관이 없는 제목이라서요.

 

#설왕은TV #박완서 #그많던싱아는누가다먹었을까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더 읽어 보고 싶어서 이 책은 일단 도서관에서 빌렸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이 책을 사서 봐야겠다고 생각한 단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뒷간에서는 잘생긴 똥을 많이 누는 게 수였다. 똥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땅으로 돌아가 오이 호박이 주렁주렁 열리게 하고, 수박과 참외의 단물을 오르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본능적인 배설의 기쁨뿐 아니라 유익한 것을 생산하고 있다는 긍지까지 맛볼 수가 있었다." (22)

 

저는 사실 이 부분을 보면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사람이 먹고 나서 몸이 흡수하지 못한 부분을 냄새나는 배설물로 밖으로 내보낸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오류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로그램으로 따지면 버그와 같은 것이라고 여겼지요. 프로그램의 버그는 업데이트를 통해서 계속 수정되잖아요. 그러나 인간은 그럴 수가 없어서 저는 인간이 배설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오류라고 생각했거든요. 도저히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생각을 못했는데 이 소설에 나온 꼬맹이 아가씨는 똥을 누면서 자긍심까지 느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샀습니다. 배설의 즐거움과 긍지를 말한 그다음 쪽도 마음에 드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싱아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 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 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한다." (23)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긍지를 느끼며 기쁨으로 살아갔던 이 꼬맹이 아가씨의 어린 시절이 마음에 들었고 이 아가씨는 그냥 자라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시대는 일제 강점기였고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하고 나서 몇 년이 지나 한국전쟁이 발발했고요.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아마 나도 그 당시에 살았다면 비슷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어서였습니다. 항일 독립투사로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에 맞서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산다거나 혹은 일제의 앞잡이로 친일행각을 벌이며 호의호식했던 부류와 저는 거리가 멀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박완서 작가와 같은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이 어떻게 그 시대를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어서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항일 독립투사의 삶도 아니고 친일 매국노의 삶도 아닌 대다수의 보통 사람의 삶을 상상해 볼 수 있고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감자꽃 (감자꽃처럼 웃는다는 표현이 있어서...)

 

박완서 작가의 일제 강점기 시대의 삶이나 전쟁 체험은 제가 상상하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한 저의 상상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평온하던 마을에 갑자기 폭탄이 떨어져서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들도 그런 것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장면들이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되니 그렇게 묘사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박완서 작가의 글은 달랐습니다. 이런 것이 또한 소설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총소리, 폭탄 소리도 나고 누군가 죽고 다치고 하는 상황도 있지만 그런 전투의 순간들은 사실 전체 시간 중에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작습니다. 전투가 일어나고 마을이 점령되고 누군가는 잡혀가고 누군가는 살아남고 그 와중에 이념의 대립으로 인해 서로를 적으로 대하고 죽여야 할지 아니면 같이 살아나가야 할지 판단하기 애매한 긴장과 갈등 관계가 계속됩니다. 박완서의 가족은 제대로 피난을 가지 못하고 마을에 남게 되는데요. 인민군이 들어옵니다. 몇 달 뒤 국군이 다시 돌아오고요. 전투 때문이 아니라 이념의 문제로 서로 죽고 죽이게 됩니다. 누군가가 죽고 다쳐서 아프고 슬프기도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의 족적들이 내가 죽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하는 시간이 바로 전쟁의 시간인 것 같습니다. 타인을 용서할 수 없는 시간인 것이죠. 타인을 용서하는 순간 내가 죽을 수 있으니까요.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는 중요한 이유 하나를 더 알게 되었습니다. 

 

"단박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갈 만큼 승승장구할 때 승자가 과연 그렇게까지 모질게 굴 필요가 있었을까. 승리의 시간은 있어도 관용의 시간은 있어선 안 되는 게 이데올로기 싸움의 특성인 것 같다." (272)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이 북한군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수복되고 그리고 다시 1. 4 후퇴로 인해 서울에 있던 사람들은 다시 또 피난을 떠납니다. 박완서 작가의 가족은 간절히 피난을 가고 싶어 했지만 피난을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나옵니다. 텅 빈 마을,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람 없는 공간을 쓸쓸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지대가 높아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마치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쳤다. 그건 천지에 사람 없음에 대한 공포감이었고 세상에 나서 처음 느껴 보는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독립문까지 뻔히 보이는 한길에도 골목길에도 집집마다에도 아무도 없었다. 연기가 오르는 집이 어쩌면 한 집도 없단 말인가. 형무소에 인공기라도 꽂혀 있다면 오히려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280)

 

어떤 이유든지 간에 지구가 완전히 멸망하고 인류의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도시를 바라보는 느낌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박완서 작가

 

박완서 작가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이런 것도 소설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데요. 지어낸 소설보다도 현실이 더 극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현실이 소설보다 더 꾸며낸 듯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소설은 개연성이 있는데요. 소설은 그럴듯하게 써야 하잖아요. 그런데 현실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때로는 정말 전혀 아무런 개연성이 없어서 그냥 막 일어납니다. 소설이라면 개연성이 없어서 다시 써야 하는 소설 같은 현실이 이 책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정말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죠.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을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작가가 어떤 뚜렷한 목적 없이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목격자처럼 그대로 서술한 이 책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면 저의 경험도 아마 박완서 작가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위대한 사람, 특별한 사람의 대단한 경험이 아닌 보통 사람의 일상적인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추천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두고두고 읽을만한 가치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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