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사람을 죽이는 냄새 or 사람을 살리는 냄새_박완서 <후남아, 밥 먹어라>

설왕은 2020. 2. 25. 09:52

 

2020년 2월 25일 서울에는 비가 옵니다. 안 그래도 세상이 멈추어 버린 것 같은데 비까지 오네요. 코로나 19의 폭발적인 전염 사태로 인해서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마비된 것 같습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누군가가 말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네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정말 위험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정지된 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코로나 19에 감염되는 것은 아주 두려운 일은 아닌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격리되어야 한다는 사실로 인해 슬플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돌아다니지 말아야 하는 이 현실이 참 별로네요. 정말 감옥이 따로 없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후남아, 밥 먹어라>는 미국으로 시집간 한 여인의 일생과 그 여인이 한국에 방문해 아픈 엄마를 만나는 사건을 그린 단편 소설입니다. 소설의 초반부를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10년 정도 살아 본 경험이 있어서 미국 이민자들의 삶에 공감할 수 있었거든요. 박완서 작가가 미국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민자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매우 사실감 있게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셋째 딸 후남이는 미국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남자와 결혼합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경제 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은 시절에 미국은 별천지와 같은 곳이었겠지만 고국을 떠난 이민자들의 마음의 한 구석에 드는 허전함이란 아무리 좋은 세상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겠지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미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는 우리나라가 더 그리워지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본 대부분의 한국분들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식당을 쉬는 날 아내를 데리고 집에서 가까운 라구나 비치로 피크닉을 간 적이 있다. 이민 초기 이 큰 나라에서 툭하면 왜 그렇게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던지, 가슴이 옥죄어 미칠 것 같을 때 그 바닷가에 가면 속에 맺혔던 게 탁 터지면서 갈매기처럼 미소하고 자유로워지는 걸 느끼곤 했다. 그는 아내에게도 그 아름다운 비치가 위안이 되길 바랐다.... 이건 태평양이고 이 바다는 한국에 닿아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지구 상에 생겨난 교통수단 중 가장 빠르다는 비행기로도 스무 시간이나 걸려서 날아온 바다가 고국에 닿아 있다는 말에 난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바닷바람 때문인지 숨차게 말하며 그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은 얼마나 유순한지, 모르는 게 아니라 단지 생각이 못 미쳤을 뿐인 것을 상기시켜줬을 따름인데 그걸 마음으로부터 고마워하는 여자가 안쓰러웠다." 

 

이 여인의 눈빛이 그려졌습니다. 이 소설은 이렇게 한참을 미국 이민자의 삶을 서술합니다. 저는 그렇지, 그렇지, 그래, 하고 마음으로 계속 긍정의 추임새를 넣으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소설이 중반부를 넘어가자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왜 이 소설의 제목은 <후남아, 밥 먹어라>일까? 후남이는 어린이가 아닙니다. 미국으로 시집가서 이제 할머니가 되었어요. 누가 이 할머니에게 "후남아, 밥 먹어라." 하고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어 가고 있는데요. 사건이 발생합니다. 후남이의 어머니가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치매까지 걸리셔서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후남이는 엄마를 보러 한국에 갑니다. 엄마는 후남이가 누군지 모릅니다. 후남이는 심란한 마음으로 잠깐 동네를 산책하러 나갑니다. 그리고 고국의 포근함을 느끼며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은 상황에서 후남이를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후남아, 밥 먹어라. 후남아, 밥 먹어라."

 

엄마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막내딸을 부르러 나온 것입니다. 후남이 할머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 냅니다. 

 

"어머니가 저만치 짧게 커트한 백발을 휘날리며 그녀를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아 저 소리, 생전 녹슬 것 같지 않게 새되고 억척스러운 저 목소리, 그녀는 그 목소리를 얼마나 지겨워했던가."

 

 

엄마가 정신을 차리고 후남이를 위해 무쇠솥을 씻고 불을 피워서 밥을 지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후남이를 부르러 나온 것이었습니다. 

 

"녹물은 안 들었는지 몰라도 밥 뜸 드는 냄새에는 무쇠 냄새도 섞여 있었다. 매캐한 연기 냄새도, 연기가 벽의 균열을 통화하면서 묻혀온 흙냄새도, 그 모든 냄새와 어우러진 밥 뜸 드는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아 이 냄새, 이 편안함, 몇 생을 찾아 헤맨 게 바로 이 냄새가 아니었던가 싶은 원초적인 냄새, 이열치열이라더니 음식 때문에 뒤집힌 비위를 부드럽게 위로하는 이 편안한 냄새."

 

박완서 작가의 구체적인 서술을 읽고 있으니 정말 무쇠솥에 장작불로 한 밥 냄새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밥을 먹어야 사람이 살 수 있는데요. 꼭 먹어야 사는 것이 아니라 냄새만으로도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후남이는 알맞게 부숭부숭하고 따끈한 아랫목에 편안히 다리를 뻗고 누웠다. 그리고 평생 움켜쥐고 있던 세월을 스르르 놓았다. 밥 뜸 드는 냄새와 연기 냄새와 흙냄새가 어우러진 기막힌 냄새가 콧구멍뿐 아니라 온몸의 갈라진 틈새로 쾌적하게 스며들었다."

 

기나긴 이민 생활로 인해 후남이의 마음에 생긴 갈라진 틈새가 엄마가 지어준 밥 냄새로 메꿔지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냄새는 엄마가 해주는 밥 냄새일 것 같습니다. 나를 살려주고 키워준 냄새일 테니까요. "평생을 움켜쥐고 있던 세월을 스르르 놓았다."라는 표현이 참 마음에 듭니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네 개나 받으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기생충> 열풍이 불었습니다. <기생충>에서는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냄새, 그래서 결국 죽음을 부르는 냄새가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별것도 아닌데 그 냄새로 인해서 사람의 마음 전체가 흔들리고 그래서 그 흔들리는 마음에 몸이 반응하기도 하는데요. 설마, 그럴까, 싶은데 사람이 그러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기생충>이 사람을 죽이는 냄새에 대한 묘사라면 박완서 작가의 <후남아, 밥 먹어라>는 사람을 살리는 냄새에 대한 탁월한 묘사입니다. 

 

저는 후자가 더 좋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가끔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싫어서 남의 나라로 가고 싶을 때가 있지요.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를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살기 좋은 나라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에 가면 행복한 삶을 살기 어렵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태어난 땅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이민 생활이 어떤 것인지, 그 감정을 느껴 보고 싶으신 분에게 <후남아, 밥 먹어라>를 추천합니다. 정말 이민자의 기분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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