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설교

[성탄절설교]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_히브리서 1:1-4

설왕은 2020. 12. 25. 12:00

 

* 분당성화교회에서 설교한 말씀입니다. 

* 2020년 12월 25일 성탄절 설교

 

(히 1:1-4, 개정)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들어가는 글

기쁜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 날에 예배에 함께 하는 모든 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기쁨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작년 크리스마스 기억나십니까? 잘 안 나시죠? 그런데 올해 성탄절은 두고두고 기억에 날 것 같습니다. 성탄절인데도 코로나 때문에 교회에 제대로 모이지 못했습니다. 오붓하게 모였는데요. 교회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고 지금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드리시는 분도 2020년의 성탄절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참 알 수가 없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2020년의 성탄절에 우리가 이렇게 모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입니다. 코로나 19와 같은 바이러스가 이 세상에 태어날 줄 몰랐죠. 또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작년에 제가 2020년 성탄절에 여기에 있을 줄 몰랐습니다. 전혀 예상을 못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작년에 저를 알았던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었죠. 삶이 지루하게 하루하루 이어져가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날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순간마다 새로운 일이 발생합니다. 기적과 새로운 일에 수시로 반응하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순간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도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도 믿기 힘든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붕어빵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옛날부터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말씀하셨다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보통 저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몰라도 누구인 것 같다 정도는 짐작하기도 하는데 히브리서는 아예 그런 짐작도 불가능할 정도로 저자에 대해서 알려져 있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의 수신자는 아마도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에 살고 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헬라화된 유대인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문화에 익숙하게 된 유대인이라고 설명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시대로 바꾸어서 우리나라를 대입해서 설명하면, 글을 써서 보내는데 뉴욕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보내는 글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1절에 나온 설명은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죠. 선지자뿐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나 야곱과 같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되는 인물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움직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수많은 예언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숨어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천사나 선지자 혹은 일반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계속 말씀해 오셨습니다. 성경에 쓰여 있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말을 걸어오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말씀을 하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쭉 말씀해 오시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결정적인 말씀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로 말할 것 같으면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상속자이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물려받을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가만히 있다가 그 모든 것을 다 물려받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세상이 처음 창조될 때 이미 자신을 통하여 세상을 존재하게 한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히브리서 저자는 13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입니다. 찬란한 햇살 같은 분이죠. 혹은 영롱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같은 분입니다. 다이아몬드를 불빛 아래에서 돌려서 구경하다가 빛이 반사되어서 눈이 부실 때가 있잖아요. 예수님은 그와 같은 광채이신 것입니다. 그 광원은 하나님이시고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말로 예수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본체의 형상이라고 선포합니다. 동전에 새겨진 모양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동전에 모양을 새길 때 모양을 내기 위한 틀이 있습니다. 그 틀 안에 동전이 될 물질을 넣고 찍어 내면 동전에 모양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일종의 틀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틀로 딱 찍어낸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의 모습을 가진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이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요 14:8-9, 개정)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가벼운 말로 바꾸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붕어빵입니다. “빌립, 왜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합니까? 나와 하나님은 붕어빵입니다. 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어디에 계신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님은 예언자나 천사가 아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예언자인 것 같았는데요. 회개하라고 외치시기도 했고, 기득권 세력을 비판하기도 하셨습니다. 병을 고치고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폭풍우를 잔잔케 하는 신기한 능력도 행하셨습니다. 구약에 보면 예수님이 행하신 것과 같은 기적을 행하는 예언자들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언자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지금도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예언자 중의 한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은 예언자를 아니라고 말을 했습니다.

 

어떤 유대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을 고려해서 예수님이 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십자가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 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짜 유대인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왕의 자리를 얻지 못한 실패한 왕이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다윗이나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이죠. 그들은 예수님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런 설명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이면 신이고 사람이면 사람이지, 사람인데 신인 그런 존재가 가능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다면 예수님은 천사와 같은 존재인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고 하나님 본체의 형상이라고 한다면 천사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천사가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 모양을 한 존재인데 사람은 아니고 하나님의 메신저로서 거의 하나님과 비슷한 그런 존재로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에서도 천사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그 천사를 하나님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천사도 스스로를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이해하고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을 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 다리를 절게 되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런데도 천사를 보내주지 않으려고 막아섰죠. 그때 천사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과 더불어 싸워 이겼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야곱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와 같이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스스로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도 천사를 그런 식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은 천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훨씬 더 뛰어난 분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이 받은 이름은 천사들이 받은 것보다 훨씬 더 우월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15절부터 그것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본문에 대한 설명으로 여기까지입니다. 

 

예수님 하면 떠오르는 것은?

오늘은 크리스마스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생각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십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예수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아마도 많은 분이 예수님 하면 떠올리는 것은 바로 십자가일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채찍으로 인해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고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고 고통 받고 조롱받는 예수님의 모습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십자가 귀걸이를 하고 십자가를 예배실의 정면에 그리고 교회의 가장 꼭대기에 두는 이유는 우리는 그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사실 끔찍한 사형틀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일반적인 영웅이라면 어땠을까요?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어땠을까요? 예수님이 고개를 들고 힘을 한 번 주면 손과 발에 박혀 있던 못이 저절로 빠지고 예수님이 내려오시고 도망갔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내몬 사람들을 오히려 결박하고 그들을 예수님 앞에 무릎 꿇게 해서 그들의 죄를 묻고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면 십자가는 반전과 승리의 이미지를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냥 모든 고통을 다 당하셨습니다.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금방 숨을 거두셨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볼 수 있습니까?

 

오늘은 성탄절이니까 예수님의 탄생의 순간을 떠올려 봅시다. 말구유에 뉘어 있는 예수님을 한 번 떠올려 봅시다. 외양간에 있다고 상상해보죠. 여러분이 외양간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여러분을 반기는 낯선 것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 외양간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 근처에만 가도 우리를 반기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소똥 냄새 혹은 말똥 냄새입니다. 아무리 외양간을 깨끗하게 치운다고 하더라도 그 냄새를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동물에게 양변기를 사용하게 할 수도 없고요. 동물들의 화장실은 언제나 푸세식입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양간은 깨끗한 곳이 아니죠. 사람이 사는 집도 청소하지 않으면 금방 어질러지고 먼지가 쌓이고 때가 낍니다. 외양간은 더 그렇겠죠. 자주 청소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말구유에, 다시 말하면 말의 여물통을 침대 삼아 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소 환상적인 분위기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말구유를 상상합니다. 하지만 실제 모습은 우리의 상상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외양간은 구질구질하고 냄새나는 곳입니다. 우리가 말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본다면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상상하는 신의 모습

사실 우리가 상상하고 생각하고 짐작하는 신의 모습은 예수님과 같은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신은 훨씬 더 힘이 있고 훨씬 더 멋이 있는 존재입니다. 요새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영화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슈퍼히어로를 좋아하십니까? 영화에서 슈퍼히어로 역할을 하는 배우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영화에서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실제 대부분 키도 크고 아름답고 멋있는 사람들입니다. 토르나 원더우먼, 슈퍼맨,캡틴 아메리카, 울버린과 같은 매력적이고 멋이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영화에서 특별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열광하죠. 그것이 영화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가짜인 것을 알지만 우리가 상상했던 영웅들,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줄 것 같은 그런 영웅들이 영화에서라도 나와서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열광합니다.

 

인간은 은연중에 우리 몸의 연약함과 한계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동시에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들이나 문제도 많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과 성욕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의 몸이 없다면 그런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 몸은 흙으로 만든 질그릇과 같습니다. 깨지기 쉽고 상처 받기 쉽고 망가지기 쉽습니다. 되게 보잘것없는 것 같고 또 연약하기까지 합니다. 가능하다면 쇠그릇과 같이 강력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크리스털 그릇과 같이 아름다우면 어떨까요? 사람의 몸이 연약한 점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람의 몸은 영양분을 계속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영양분을 많이 섭취한 후에는 배가 안 고프면 좋은데 아무리 많이 먹어도 보통은 반나절만 지나면 다시 또 배가 고픕니다. 그런데 모든 생물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개구리나 곰과 같은 동물은 가을에 충분히 음식을 먹고 동면에 들어가죠.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아무 이상 없이 정상적인 신체 능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신기한 능력이죠. 식물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과학기술을 통해서 친환경에너지로 태양광을 이용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식물은 땅에 뿌리만 박고 있으면 굳이 뭐를 먹지 않아도 알아서 햇빛을 먹고 잘 큽니다. 우리는 햇빛만 받고 있으면 금방 말라죽을 것입니다. 인간은 그와 같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금식이 끝나자마자 사탄이 찾아와서 한 시험이 돌을 떡 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에 예수님이 그 시험을 받고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까, 안 했을 것 같습니까?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셨을까요? 제 생각에는 예수님이 고민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40일 금식을 하기도 했고 금식은 끝났고 이제 뭘 좀 먹어야 할 텐데, 예수님은 돌을 부드러운 빵으로 만들 능력도 있었거든요. 그리고 예수님은 정말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돌을 떡이 되게 하라는 사탄의 유혹은 예수님에게도 달콤한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이셨기 때문에 인간의 연약함을 고스란히 경험하셔야 했습니다.

 

우리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

예수님은 연약하고 문제도 많고 힘도 없고 별로 멋있지도 않은 인간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반적인 우리의 관점입니다. 우리는 몸을 받았는데 몸의 한계와 문제로 인해서 불만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인간의 몸은 하나님을 담기에 충분한 그릇이었습니다. 충분하다기보다는 딱 좋은 그릇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을 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그릇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담기에 딱 좋은 그릇이었습니다. 어쩌면 유일한 그릇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고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믿지 못하는 거죠. 이렇게 연약하고 문제 많고 힘도 없고 멋도 없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날 마지막에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그 말씀을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것은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인간이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육신 사건은 인간이 하나님을 담기에 충분한 존재, 그렇게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4세기의 교부 아타나시우스는 신이 인간이 된 것은 인간이 신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인간은 신이 온전히 취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사랑하는 성화 공동체의 가족 여러분,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 영광의 광채가 보이십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온갖 핍박과 박해에도 무릅쓰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던 것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니까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지옥 가기 싫으면 복음을 전해야지, 하나님의 화를 피하기 위해서 하나님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 영광의 광채를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본체의 형상을 알아차린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예수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예수님을 그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영광의 광채이십니다.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 말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를 떠올릴 때 그들은 하나님 영광의 광채를 보았던 것입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영광의 광채를 볼 수 없다면 우리는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영광의 광채를 볼 수 있으면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이 열릴 것입니다. 연약하고 한계가 많고 제약이 있고 문제가 많은 힘도 별로 없고 멋도 부족해서 그다지 갖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몸, 그리고 이 몸을 입고 살고 있는 삶에 대한 견해가 바뀝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본체의 형상이시고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화려하지도 않고 강력하지도 않은 소박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은 우주 최고의 명품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명품을 사서 자신을 치장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명품 좋죠. 최상급 디자이너와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가 만들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세련된 예우로 파는 물건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우주 최고의 디자이너가 만든 우주 제일의 명품입니다. 그 디자이너께서 여러분이 너무 마음에 드셔서 자신이 만든 작품 안에 살고 싶어 하십니다. 사랑에 빠지신 것입니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눈이 부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영광의 광채를 보시고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몸에 담으셔서 이 세상과 이웃들에게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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