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림

고갱, 황색의 그리스도 (1889)

설왕은 2019. 3. 6. 16:09

후기 인상주의 프랑스 화가 고갱(1848-1903)의 "황색의 그리스도"(1889년작, 원제 Le Christ jaune  )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을 좀더 쉬운 우리말로 바꾸면 "노란 그리스도"가 되겠네요. 재미있는 그림 제목입니다. 보통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그렸다면, '예수의 수난', '십자가에 달린 예수'와 같은 제목을 짓는 것이 보통일 텐데요. 색깔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이용해 "노란 그리스도"라는 제목을 지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고갱에게는 이 노란 색깔이 이 그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고갱이 같은 해 1889년에 그린 "녹색의 그리스도"라는 작품도 있습니다. 아래에 보이는 작품입니다. 위에 그림과 아래 그림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죠? 



"노란 그리스도"는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고 있다기 보다는 평안하게 잠에 빠져 있는 듯한 모습니다. 주변의 노란 배경과 예수의 노란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고요. 빨갛게 단풍이 든 나무가 마치 하트 모양과 같습니다. 십자가 아래에 모여 있는 여인들의 표정도 온화하고 평온해 보입니다. 반대로 녹색의 그리스도는 매우 고통스러워 보입니다. 옆구리에 창자국도 선명하고요. 녹색의 그리스도는 확실히 죽은 상태로 보입니다. 뒤에 있는 여인들의 모습도 그리스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죽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버린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와 관계 없어 보이는 앞쪽의 한 여인만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노란 그리스도"는 살아 있는 예수라면 "녹색의 그리스도"는 죽어 있는 예수입니다. "노란 그리스도"에 살아 있는 예수 아래의 여인들은 자기의 색깔을 가지고 예수와 같이 생기가 있는 모습입니다. "녹색의 그리스도"에 그리스도 뒤에 있는 여인들은 그리스도와 같이 생기를 잃어버린 모습니다. 왜 그럴까요?


고갱은 증권회사의 직원으로 일하다가 30대 중반에 화가가 되기 위해서 떠납니다. 그리고 그는 원초적인 자연을 동경하여 타히티 섬으로 들어가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죠. 제가 볼 때 노란 그리스도는 자연 속에서 고갱이 발견한 그리스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연 속에서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했고 또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던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자연의 반대는 도시가 되겠죠. 녹색의 그리스도는 도시의 그리스도, 제도권 교회 안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풀색과 같은 살아 있는 녹색이 아닌 청동색의 죽어 있는 동상 색깔의 그리스도가 그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 아닐까요? 교회 안에 예수는 죽어 있고 그를 따르는 자들도 역시 죽어 버린 것 같습니다. 고갱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대는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던 19세기 후반이었습니다. 교회 안에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고갱도 니체와 같은 의견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갱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요. 노란 그리스도는 마음에 듭니다. 잠시 후에 예수가 하품을 하며 눈을 뜰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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